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칼다라 (문단 편집) == 음악 세계 == ||[youtube(cz4sYC2zsP0, width=520, height=260)]|| || 트리오 소나타 op.1 중 5번, e단조 || 지금까지 남아있는 칼다라의 곡은 3000곡이 넘는다. 다만 아직까지 음악학자들이 붙인 칼다라의 작품번호는 아직 없다. 그가 남긴 음악들로 봐서 작품번호 붙이는 시간은 오래 걸릴 듯 하다. 엄청나게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어 기악곡은 물론이고 [[마드리갈]], [[시편]], [[모테트]], [[봉헌 성가]] 등 거의 작곡하지 않은 장르가 없다. 칼다라는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지위인 [[신성 로마 제국]]의 부악장으로 재임하면서 당시의 인기 작가였던 아포스톨로 체노, [[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]] 등과 협력하여 수많은 작품을 썼는다. 그가 최초로 손댄 대본들은 동료나 후배 작곡가들 여러명이 돌려쓸 정도로 인기 있었고 이로 인하여 당시의 오페라 세리아 유행을 주도하던 최고 [[유행]] 작곡가였다. [[모차르트]]의 작품으로 유명한 《티토의 자비''la clemenza di tito''》 역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칼다라가 최초로 곡을 붙인 것. [* 칼다라 이후로도 [[요한 아돌프 하세]], [[발다사레 갈루피]] 등등도 곡을 붙였다.] 또한 그의 오라토리오의 유명세는 오페라 못지 않았는데, 한 세대 뒤의 음악학자 찰스 버니는 칼다라를 '''헨델 이전 최고의 오라토리오 작곡가'''라고 극찬한 바 있고 요한 고트프리드 발터 역시 그가 편찬한 『음악사전』 칼다라 항목에서 칼다라의 오라토리오 《슬픔의 왕''Il Re del dolore''》과 《요셉''Giuseppe''》을 언급하는 등[* 사실 두 오라토리오 뿐만 아니라 칼다라의 기악곡도 짤막하게 언급된다.] 그의 오라토리오 역시 대단히 인기있었던 장르임을 알 수 있다. 바로크 후기에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가 가장 융성했던 장소가 [[빈(오스트리아)|빈]]과 [[런던]]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, 칼다라는 신성 로마 제국 음악계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이탈리아 양식의 극음악들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작곡가 중 한 명이라 볼 수 있겠다. 그러나 이러한 칼다라 살아생전의 명성과 높은 음악성과는 달리, 그의 극음악들은 현재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. 다행스럽게도 그 중에서도 몇몇 아리아들은 현재까지 자주 연주되고 있다. 추가적으로, 당시로써는 생소했던 덜시머[* 필사본에서는 살테리오(salterio)라고 지칭되고 있다.]를 오라토리오에서 오블리가토 악기로 자주 사용한 작곡가이기도 하다. 대표적으로는 1726년 작 오라토리오 《꿈을 풀이하는 요셉''Gioseffo che interpreta i sogni''》 中 요셉의 아리아,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YCAkmioPd2w|Libertà cara e gradita(친애하고 환영하는 자유여!)]]가 있겠다. 칼다라의 남긴 기악곡을 살펴보자면, 몇 곡의 신포니아와 두 개의 트리오 소나타 앨범 그리고 첼로 소나타 정도가 남아있다. 그나마 현대에 자주 연주되는 칼다라의 성악곡 중에는 [youtube(SKK9AuWMvqY)] 미사 돌로로사(Missa Dolorosa)와 [youtube(K-G4kAjf0Yw)] 슬픔의 성모(Stabat mater) 등이 있다. 아래 표 중 옅은 녹색으로 돼 있는 작품은 [[콜라보레이션]] 작품, 분홍색으로 되어 있는 작품은 소실된 작품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